흥선대원군의 서원정리

조선 시대 양반들이 자신들의 세력 기반 확충을 위해 서원의 증가가 계속되어 18세기 말 정조 때에는 전국적으로 650여 개의 서원이 있었다.

서원은 국가 재정의 낭비를 초래하였을 뿐만 아니라 주변 농민들에게 많은 폐단을 주었다. 서원을 통한 지방 양반들의 횡포는 민심을 이반시키는 데 중요한 작용을 하였다.

흥선 대원군의 경우에도 세도가에 눌려 불우한 생활을 할 때 이들 서원의 비행과 횡포를 직접 경험하면서 그 폐단을 절감하고 있었다.

그는 집권을 하자 곧 전국의 서원과 향사(鄕祠)의 실태를 조사하도록 명령한 후, 곧이어 서원의 사설 및 남설을 금지하였다.

그리고 1865년 3월 횡포가 극심하여 백성의 원성이 가장 높았던 만동묘를 철폐시켰다. 유생들은 강력히 반발하였으나, 흥선 대원군은 "백성을 괴롭히는 자는 공자가 다시 살아난다고 하여도 이를 벌할 것이다."라고 하며 강경하게 그의 의지를 실현시키며 전국의 서원 가운데 47개소만을 남겨 두고 모두 철폐하도록 하였다.

서원 정리 작업은 경복궁의 중건, 병인, 신미 양요를 거치는 동안 일시 중단되기도 하였으나, 1871년 신미년에 이를 마무리지었다.

서원 정리 결과 막대한 토지가 국가에 환수되었으며, 농민들의 불법적 부담이 감소되어 크게 환영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러나 양반들은 흥선 대원군에 대한 불만을 품게 되었으며, 이는 흥선 대원군의 몰락을 촉진시키는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by 산사애인 | 2004/05/20 21:42 | 역사이야기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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